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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들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키워드:

삼국의 건국, 삼국의 성장과 멸망, 삼국의 문화, 삼국의 인물, 발해의 건국과 성장, 그리고 멸망

 

[삼국시대]

 

고구려의 건국

주몽은 천제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의 자식으로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여의 왕인 금와의 보호를 받고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렸습니다. 주몽이 자라면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이를 질투한 금와왕의 왕자들이 죽이려하였습니다. 주몽은 자신을 따르던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이들을 피해 부여를 떠나 졸본에 도착하여 그곳의 실력자였던 소서노와 함께 왕국을 세우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정했습니다.

 

고구려의 성장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워 인재를 길렀습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전성기를 맞아 만주와 한강 이남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의 영토확장과 전성기를 기념하여 장수왕이 세운 비석입니다. 고구려는 이후 계속된 중국의 침략을 물리쳤는데 수나라의 113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과 당나라의 30만 대군을 물리친 안시성전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구려의 문화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무용도수렵도가 있는 무용총이 있습니다. 남녀의 힘찬 춤사위나 말을 탄 무사들이 활을 쏘며 호랑이를 사냥하는 모습에서 고구려인들의 씩씩하고 굳센 기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인물

광개토대왕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갖추어준 바탕에서 정복 전쟁을 하였습니다. 국경 북쪽으로 연 나라와 남쪽으로 백제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고구려의 영토을 넓혔습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113만명의 대군을 물리친 명장입니다. 고구려를 침범하자 적진에 가 형세를 정탐하고 후퇴작전을 이용하여 적군을 지치게 만든 다음, 거짓 항복을 하여 후퇴하는 수나라 군을 살수에서 공격해 거의 전멸시킨 뛰어난 책략가입니다.

 

고구려의 멸망

고구려는 중국과의 여러 번의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졌습니다. 당나라에게 굴복한 왕과 신하들을 죽이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당나라와 싸운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아들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혼란에 빠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백제의 건국

온조는 고구려 왕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이었으나, 배다른 형제인 유리가 왕위를 잇게 되자 어머니인 소서노와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온조는 지금의 한강에 도달하여 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10개의 귀족세력을 치하하며 나라이름을 십제라 불렀습니다. 십제는 나중에 크게 성장하여 백제로 이름을 고치게 됩니다.

 

백제의 성장

백제는 한강 유역에서 일어나 넓은 평야바닷길을 통해 삼국 중에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근초고왕 때 남쪽으로 마한 54개 나라를 정복하고 세력을 크게 떨쳐 바다 건너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합니다. 또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한강 이북지역을 차지하고 고구려왕인 고국원왕을 사살합니다.

 

백제의 문화

백제의 문화는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예술적 솜씨가 돋보입니다. 백제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로 백제 금동 대향로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무령왕릉이 있는데 백제인들의 뛰어난 공예 기술과 예술적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백제의 인물

근초고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가야와 마한을 정복하고 중국의 요서지방까지 진출하였습니다. 대외관계의 폭을 넓히고, 역사서 편찬, 수도의 확장, 왕권 강화, 해상 무역 등을 발전시키는 등 다방면에 걸친 업적을 남긴 임금입니다.

백제 말기의 장군인 계백은 백제의 마지막 명장입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출전하여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5만명의 나당연합군과 맞서 네 차례나 격파하였으나 결국 수적 열세로 인해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백제의 멸망

백제는 5세기경부터 고구려의 힘에 밀려 세력이 약해집니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도읍을 공주로 옮깁니다. 한때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싸워 성왕때는 영토를 회복하였으나 신라의 배신으로 영토를 잃고 왕도 사살당합니다. 이후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신라의 건국

사로국은 왕이 없이 여섯 촌장이 나라를 다스리던 작은 나라였습니다. 어느날 한 촌장이 우물가에서 큰 알을 발견하여 돌보았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건장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뭇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었으며 해와 달이 밝게 빛났습니다. 6촌장들은 아이의 이름을 박혁거세라 부르고 사로국의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사로국은 훗날 신라로 불리게 됩니다.

 

신라의 성장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한 나라입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하고 진흥왕 때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무사집단인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백제가 고구려에게 되찾은 한강 유역을 빼앗고 가야를 정복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신라의 문화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첨성대천마도, 고분을 통해 신라의 과학기술과 왕족 및 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인물

진흥왕은 신라의 군사적, 문화적인 실력을 길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7살의 나이에 신라의 왕이 되어 백제 땅이었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평정하였습니다. 신라의 순수비는 이렇게 새로 개척한 땅에 세운 비석입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입니다. 멸망한 가야의 왕족이었으나 신라의 장군으로 큰 활약을 합니다. 당나라 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고, 이어서 고구려 정벌에 나서 여러 번 실패했으나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남북국 시대]

 

발해의 건국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고구려 땅을 직접 다스리려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거세게 저항하였습니다. 마침 거란족이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옛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어 당나라에 맞서 발해를 세웠습니다.

 

발해의 성장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주변국에 알리고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였는데 나중에는 옛 고구려의 땅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여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9세기에는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해동성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발해의 문화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발해의 석등, 와당, 돌사자상, 정효공주묘를 통해 발해인들의 힘차면서도 세련된 예술적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발해의 인물

대조영은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당나라의 뛰어난 장수였던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동모산을 도읍으로 한 진국을 세웠는데 713년 나라이름을 발해로 바꾸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신라와 함께 삼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신라까지 지배하여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욕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당나라 군사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에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까지 힘을 합쳐 싸워 당나라를 원산만 이북으로 몰아내고 진정한 의미의 삼국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통일 신라의 골품제

통일 신라 이전부터 신라에는 엄격한 신분제도인 골품제가 있었습니다. 신라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골품제에 따라 여러 등급의 신분으로 나뉘었으며, 신분에 따라 관직의 직급, 집의 크기, 옷의 색깔까지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로 능력이 뛰어나도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통일 신라의 문화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이전보다 불교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불교문화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불교 경전을 공부하거나 어려운 수행을 하지 않아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원효의 가르침이 퍼져 백성들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또, 통일 신라는 신라의 문화 위에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합하여 찬란한 민족 문화를 이룩하였습니다. 불국사석굴암,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뛰어난 문화재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통일 신라의 인물

바다의 왕이라 불린 신라의 무장 장보고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로 건너가 출세를 했으나 해적들의 시달림을 당하던 신라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해로의 요충지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여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해적을 완전히 소탕했습니다. 또한 청해진을 중심으로 당나라-신라-일본을 잇는 국제 무역을 주도하여 통일 신라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원효는 한국의 불교사상가 가운데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는 불교를 대중화하여 서민들의 생활 속에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 한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연구하였으며, 이것들을 하나의 진리로 융합하려는 통불교의 전통을 남겼습니다.

최치원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를 지녔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습니다. 18세의 나이에 당나라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하고 신라에 돌아와 정치 개혁을 시도하지만 6두품이라는 신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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